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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원래 춘향전에서는 춘향이보다 향단이가 미인 이었다고 하던데.....
  글쓴이 │ 선양회     등록일자 │ 13-05-27 10:57     조회 │ 3186    
차상찬(車相瓚)이 지은 <해동염사(海東艶史)>라는 책에 그런 설화가 전해지는데요. 관기 월매의 딸 춘향은 원래 미인이 아니고 천하의 박색이어서 나이 서른이 넘도록 시집도 못 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이도령을 보고 사모하는 마음을 품어 병까지 얻게 되었는데 그리하여 어머니 월매가 계책을 써서 방자를 꾀여 이도령을 광한루로 유인하게 하고, 몸종 향단을 곱게 꾸며 이도령에게 보내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한 뒤 술이 취한 이도령을 집으로 데리고 와 춘향과 잠자리를 함께 하게 했습니다. 이도령은 예쁜 향단이와 술을 마시다가 깨보니 옆자리에 못생긴 춘향이가 누워 있는 거죠. 깜짝 놀라 뛰쳐나오니 밖에서 기다리던 월매가 일을 치렀으니 책임을 지라고 정표(情標)를 달라고 하죠. 난처해진 이도령은 자기 소매 속에 넣어 두었던 비단 수건을 정표로 주고는 그 뒤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가버립니다. 춘향은 이도령을 기다리다 못해 광한루에서 목을 매어 자살랍니다. 남원 사람들이 그녀를 불쌍히 여겨 이도령이 떠난 고개에다 장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오늘날 '박석고개'라고 하네요.

또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남원의 어떤 늙은 기생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얼굴이 매우 추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당시 남원부사의 아들 몽룡과 매우 친근하게 지냈는데, 몽룡이 뒷날 출세한 뒤에 모른 체하므로 원한을 품고 죽었다네요. 그 뒤 남원 지방에는 3년 동안 흉년이 들고 재앙이 있게 되어, 주민들이 그와 같은 흉년과 재앙이 모두 원한을 품고 죽은 춘향의 혼귀 때문이라 하였는데 그래서 이방이 춘향전을 지어 춘향의 원혼을 위로하였더니 남원에 흉년과 재앙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남원 지방에 전해지는데, 남원에 얼굴이 매우 추하여 시집 못 간 처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걸 비관하여 자살해서 원귀가 되었는데 그녀가 죽은 뒤 새로 부임해온 남원부사마다 하루밤을 지내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살한 그녀의 원귀 탓이라 하여 어느 누군가가 소설을 지어 그 원귀를 위로해 주었더니 그 뒤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춘향가 이야기
춘향전은 판소리계 소설로써, 오랫동안 구전되다가 판소리로 전해졌고